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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세상읽기

드라마 태종 이방원 1차 왕자의난 형제를 죽이다

by 꿈꾸는 드라마사냥꾼 2022.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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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왕자의 난 이복형제들을 죽이다

드라마 태종 이방원 10회까지 방영이 되었습니다. 드디어 이성계는 고려의 마지막 왕을 몰아내고 자신이 용상에 오르게 됩니다. 이성계는 본래 변방의 호족 출신입니다. 국경 근처에 살다 보니 어떤 나라의 소속인지가 애매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성계는 이러한 출신의 미천함을 극복하기 위해서 최영 장군과 함께 고려를 위해서 많은 전투에서 공을 세웠습니다. 본래는 한 씨라는 부인이 있었고, 이 부인에게서 5명의 아들을 낳게 됩니다. 이러한 이성계에게 고려의 정치적 중심지였던 개성에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도와준 이가 바로 부인 강 씨입니다. 신덕왕후인 강 씨는 본래 고려의 권문세족이었습니다. 개경에 정치적 기반이 없던 이성계에게 많은 정치적인 도움을 준 것이 바로 신덕왕후의 집안인 권문세족 신천 강 씨였습니다. 신의왕후였던 한 씨는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사망을 하였기에 조선의 첫 번째 왕후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신덕왕후에게는 두 명의 아들이 있었으니, 이방번과 이방석이었습니다. 신덕왕후는 이성계의 든든한 정치적 조력자였기 때문에 이를 이용하여 자신의 아들들 중에서 세자를 삼기 위해서 노력을 하였고, 이 때문에 1차 왕자의 난이라는 비극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방번과 이방석은 신의왕후의 아들들인 다섯 명의 아들들보다도 어렸고, 어떤 기반도 가지지 못하였고, 오로지 조선의 첫 번째 황후였던 신덕왕후와 자신의 든든한 집안이 버팀목이 되어주었습니다. 1차 왕자의 난은 막내인 방석을 세자로 삼아서 이성계의 후계자로 삼으려고 하는 것에 반대하여 이방원을 중심으로 난을 일으킨 사건을 말합니다. 정도전은 한 씨 소생의 아들들의 병권을 빼앗기 위해서 사병을 혁파하고, 이방원을 제거하려고 합니다. 이방원은 자신을 따르는 세력들과 결탁하여서, 이성계가 병들었을 때에 정도전이 한 씨 소생의 아들들을 궁궐에 불러서 모두 죽이려고 한다는 명분으로 정도전을 처단하게 됩니다. 또한 세자를 폐위하고, 귀양을 가는 도중에 살해합니다. 그의 동복 형인 방번 역시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결국에는 이 사건으로 인하여 한 씨 소생의 형제들이 정권을 잡게 되고, 처음에는 모든 신하들이 실제적인 1차 왕자의 난의 주도자이면서 가장 큰 권력을 가지고 있던 이방원에게 왕위를 물려받게 하려고 했으나, 극구 사양하면서 둘째인 방과가 정종에 오르게 됩니다. 비록 왕위에 정종이 올랐지만, 그는 정치적인 성향에 있어서는 동생인 이방원의 결정에 따랐습니다. 1차 왕자의 난은 결국에는 정권을 위해서 이복형제들을 죽이는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왜 이성계는 이방원을 선택하지 않았나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상당히 의아한 부분이 있습니다. 왜 이성계는 처음부터 자신의 왕위를 태종 이방원에게 물려주지 않았던 것인지 모르겠다. 그당시 모든 사람들이 조선 건국에 있어서 가장 큰 공을 세운 것은 이방원이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방원은 다섯 명의 아들 중에서 제일 어리지만, 머리가 명석하고, 유학을 공부한 인물입니다. 다른 형제들은 전쟁터에서 뼈가 굵은 장수이지만, 태종 이방원은 정치적 감각이 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성계는 이런 이방원을 놔두고, 뻔히 분쟁이 씨앗이 될 수 있는 가장 어린 막내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역사적으로 보면 다양한 이유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일단은 신덕왕후는 정치적인 기반이 상당히 있는 집안입니다. 본래 모든 나라의 건국 초기에는 왕권이 탄탄하게 만들어져 있는 상황이 아니라, 불안한 상황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그러니 아마도 이성계는 자신이 건국한 조선이 튼튼하게 설려면 든든한 배경을 가진 집안의 자손에서 왕위를 물려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거 같습니다. 또한 자신의 곁에서 정치적인 조력을 아끼지 않았던 신덕왕후를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런 결정을 내린 거 같습니다. 정도전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고 보아야 합니다. 정도전은 유학적인 이상 국가를 건설하고 싶어 하는 인물이었습습니다. 왕권을 견제하고, 왕의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그런 신하들의 역할을 강조하는 조선의 정치제도를 보면 그러한 정도전의 이상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자신의 이상적 유교국가를 건설하는 데 있어서 어린 이방석이 훨씬 적합한 인물이라고 생각했을 거 같습니다. 또한 권력의 최고 높은 곳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이미 정치적 기반을 탄탄히 가지고 있는 태종 이방원 보다는 이방석이 훨씬 유리했을 거 같습니다. 정도전은 끊임없이 이방원의 형제들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서 노력을 다해 왔습니다. 사병을 혁파하려고 했던 일로 이방원과 극심한 대척점에 섰던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태종 이방원은 자신이 1차 왕자의 난을 일으키기 전에 그렇게 반대하던 사병혁파를 자신이 정권을 잡고 난 이후에는 실행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건국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조선왕조에 피바람이 분 것은 바로 권력의 냉혹함을 알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강한 군왕의 정치를 펼쳤던 태종 이방원의 정책이 왜 그렇게 냉혹했는지 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왕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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